검색결과
  • (393)|경무대 사계(20)|윤석오

    (나) 이화 장엔 본 채와 따로 떨어져 정원을 거쳐 언덕 위에 조그만 별채가 하나 있다. 본격적인 조각작업은 이 별채에서 행해졌다. 이 박사는 조각문제에 관계되는 사람만을 별채에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2.26 00:00

  • (391)|경무대 사계(18)윤석오

    (다) 헌법 심의 과정에서 국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.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한데 대해 대한이라면 일본에 합병 당한 대한제국이 연상되어 좋지 않다는 반대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2.24 00:00

  • (390)|경무대 사계(17)|윤석오

    ㉯ 헌법기초 위가 다룬 헌법초안은 유진오씨 혼자서 독자적으로 만든 안이 아니라 원래 해 공 선생이 해방되던 해에 조직한 정경연구회가 검토하여 작성한 것이다. 해 공은 정부수립에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2.23 00:00

  • (388)|경무대 사계|윤석오(제자는 필자)

    좌익세력의 집요한 「테러」로 숱한 파란을 겪었지만 선거는 치러졌다 개표결과는 무소속85석, 이박사의 국민회 55석, 한민당 29석, 대회청년단 12석, 민족청년단6석, 이밖에 군소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2.21 00:00

  • (293)휴전회담의 개막(7)

    미국이나 「유엔」은 한국정부의 휴전반대 태도를 처음에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. 그도 그럴 것이 미국과 「유엔」은 바로 대한민국 수립에 산파적 역할을 했으며 공산침략을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2.21 00:00

  • (382)-제자는 필자|경무대 사계(9)

    『귀관은 어째서 이 박사의 도미를 방해하고있나.』 『네, 죄송합니다. 그러나 각하, 이 박사는 미군정에 비협조적입니다. 군정시책의 거의 전부를 철저하게 반대하고 방해하고 있기 때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2.14 00:00

  • "세계 문화 속에 한국 문화를" 문예중흥 장기계획-그 1차년도 정부의 문화 예술 시책을 본다

    한국의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20세기 세계 문화계에 「한국문화」를 심는 작업은 우리가 당면한 큰 과제 가운데 하나다. 이러한 과제를 의식하고 정책적인 부면 에서 이를 밑받침하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1.19 00:00

  • 낭산 김준연 선생의 서거를 애도함

    낭산 김준연 선생이 서거하셨다. 어떤 의미에서 「한 시대」를 대표하던 거인이 이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.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지만 낭산 선생의 경우는 그 만년에 있어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1.05 00:00

  • 한국농구 아주정상탈취에 수훈

    선수생활 13년…「아시아·톱·골·게터」로 코치재임중엔 새로운 선수 지도법을 창안 나의 은퇴 후배 기르는데 도움되길. 한국남자농구를「아시아」의 정상급으로 끌어올리는데 수훈을 세운 김

    중앙일보

    1971.12.21 00:00

  • (308)「청룡」돌아오다|파월6년…공산침략 막아「세계의 한국」과시

    주 월 한국군의 첫 철수부대인 해병 청룡부대 제1진 천여 명이 9일 부산에 개선했다. 65년10월 첫 전투부대로 파월 된 청룡부대는「캄란」만에 상륙한 후「투이호아」·「출라이」·「

    중앙일보

    1971.12.10 00:00

  • (307)미·소 공동위원회(19)제21화|문제안(제자는 필자)

    김선유씨가 펜으로 써서 마련한 가 협정문서는 6·25 때 없어져 버렸다. 이 협정에서는 차편이 있을 때 우편물을 교환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1주일에 1회씩 교환되고

    중앙일보

    1971.11.15 00:00

  • (305)|미·소 공동 위원회 (17)|문제안

    2차 공위의 큰 과제인 정당·사회 단체와의 협의는 서울과 평양에서 있었지만 양쪽이 모두 성과가 없었다. 미군 점령하의 남한에서는 4백25개의 정당·사회 단체가 공위의 협의에 참가

    중앙일보

    1971.11.12 00:00

  • 제26회 「유엔·데이」

    24일은 「유엔」창설 26년이 되는 날이다. 26년전 바로 이날, 미·영·불·중·소 등 5개국과 기타 가맹국의 과반수에 의하여 「유엔」헌장이 비준되고 그 비준서가 기탁됨으로써 그

    중앙일보

    1971.10.23 00:00

  • 해방 26주년…분단·통일 관련된 결정과 제의

    일제에서 해방된 지 26년. 국토는 양단된 채 통일를 전망은 묘연하기만 하다. 그러나 최근 미·중공간의 접근과 국제권력구조의 재편성과 함께 한반도에도 긴장완화의 기미가 서서히 엿보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8.14 00:00

  • 남북관계 약사

    ▲45년 8월10일=미국의 국무·육해·군성 합동 위에서 38선 기안, 8월13일 「트루먼」대통령이 승인. ▲46년 5월23일=38선 월경금지로 분단의 생활시작. ▲48년 4월30일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8.13 00:00

  • 주은내의 한국 문제관

    「닉슨」미대통령이 중공을 방문할 적에 한국사태가 논의될 것이냐, 또 논의된다면 어떤 각도에서 다루어질 것이냐는 벌써부터 우리의 중대한 관심사로 되어왔다. 지난 5일 중공 방문중인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8.12 00:00

  • (205)제14화 무역…8·15전후

    (하) 무역협회는 지방과 해외지부도 개설했다. 46년 겨울 맨 먼저 부산지부를 개설, 당시 그곳서 대동산업을 하고있던 김지태씨(현 조선견직·한국생사회장)가 지부장이 되었으며 얼마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7.14 00:00

  • (201)38선 돌파와 북진(17)

    (하) 북한 수복지역에서 실시한 「유엔」군정과 북진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틀어 살펴볼 때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고 이에 따르는 공과가 엇갈리고 있다. 이점은 모든 관계자들이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7.14 00:00

  • (200)38선돌파와 북진(16)

    (중) 북한수복지역의 군정은, 미8군 관할지역과 미10군단지역과는 그 체제나 실시방법 등에 있어 좀 달랐다. 원래 미10군단은 재한 미지상군 사령관인 「월튼·워커」중장의 지휘를 받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7.12 00:00

  • 4국 안보 안될 말|김종필 씨

    【의정부·인천·안양=조남조 기자】김종필 부총재는 16일 의정부·인천·안양에서 유세를 갖고 『신민당의 남북 교류론은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고 공산당이 용인하는 정권이 수립되었을 때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4.16 00:00

  • 대남 교란 공작

    북괴의 소위 최고 인민회의 제4기 제5차 회의는 4월12일 북괴 외무상 허담으로부터『현 국제정세와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촉진시킴에 대하여』라는 장문의 보고를 받고 형식적인 토론을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4.15 00:00

  • 박·김 후보, 연설서 안보 공방|춘천·원주

    박정희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두 번째 유세를 15일 하오 춘천에서 가졌다. 김대중 신민당 후보도 이날 제천과 원주에서 유세했다. 두 후보의 유세는 안보논쟁에 촛점이 맞추어져 박 후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4.15 00:00

  • (93)창군전후(12)|이경석(제자는 필자)

    미군정아래서 군대가 아닌 경비대로 발족한지 2년6개월이 지난 48년7월에는 5개 여단 15개 연대로 성장하여 장교 1천4백3명·사병 4만9천87명 등 모두 5만여명에 이르렀다.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2.27 00:00

  • 주월국군 단계적으로 감축-박대통령 연두회견

    박정희대통령은 11일상오 연두회견을 갖고 안보·통일·경제등 새해의 시책구상을 밝혔다. 약 2시간 40분에 걸친 회견에서 박대통령은 『주월한국군의 단계적 감축을 검토중』이라고 밝히고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1.11 00:00